2024-06-29
다음 사진은 2024년 국가 별 백만장자들의 이민 수를 예측한 지표다.
우리나라는 1,200명의 숫자로 당당히(?) 4위에 올랐다.
중국은 15,200명으로 1위에 올랐는데, ‘뭐야 우리랑 10배 넘게 차이가 나는데?’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인구 수 대비로 따지면 우리나라가 중국보다 2배가 많은 수치다. 즉, 비율로 따지면 대한민국이 영국에 이어 2위라고 봐도 무방한 것이다.
백만장자들이 이민을 가는 이유는 조금씩 다를 수 있겠지만, 결국 근본은 ‘내 돈을 지키기 위해서’ 일 것이다.
우선, 1,2위에 해당하는 중국과 영국은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다.
중국은 국가의 압력이 강한 곳이다. 어느 정도 사회주의가 보장받고 있지만, 만약 국가에 반하는 행동을 보인다면 가차 없이 응징을 당한다.
한 가지 예로, 중국 최대의 온라인 전자상거래 플랫폼이었던 알리바바 그룹의 창업자였던 마윈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2020년 금융 서밋에서 중국 은행을 비판하는 발언을 한 이후, 2개월 간 실종이 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실종 이후 영상을 통해 나타난 마윈은 ‘공동체 정신과 국가 봉사’를 언급했다. 무언가의 압박을 받고 태세가 변환된 모습이었다.
이처럼, 자유롭게 의견을 제시하지 못하는 나라에서 부유층은 자유로운 곳으로 떠나고 싶은 게 당연한 이치다. 그래서 중국은 매년 수많은 백만장자들이 이민을 택하고 있다.
영국은 간단히 브렉시트가 가장 큰 원인이 될 것이다.
정치적으로 경제적 불안정이 커지면서, 백만장자들은 본인의 돈을 지키기 위해 나라를 떠나고 있다.
급증하는 대한민국 부유층 이민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떠한 이유로 많은 부유층이 이민을 택하고 있을까?
1200명이라는 수치가 적은 숫자로 보일 수 있지만, 매년 증가하고 있는 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불과 2년 전인 2022년에는 400명, 작년은 800명으로 2배가 증가했으며, 올해는 1200명으로 또 한번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즉, 2년 전 400명의 인원의 3배에 해당하는 부유층이 올해 대한민국을 떠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돈 많으면 살기 좋은 나라 아닌가?’
맞는 말이다. 그런데 왜 부유층들은 이민을 택하고 있을까?
이유는 바로 ‘상속세’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상속세는 OECD 국가 중에서 최상위권에 해당한다.
(최대주주 할증과세 제외 시 50%로 일본에 이어 2위다)
세율만 보면, 이민지로 많이 가는 나라 중 하나인 미국은 40%로 우리와 10%정도 차이밖에 나지 않는데, 이게 그정도인가 싶기도 하다. (물론 10%도 매우 큰 금액이지만)
하지만 비밀은 면세 한도의 차이에서 나온다.
미국은 부모 합산 약 300억원에 해당하는 금액까지는 상속 시, 세금이 없다. 그 이상의 금액부터 40%의 세금이 붙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이민을 가는 캐나다와 호주는 심지어 상속세가 없다.
쉽게 예를 들어 내가 400억 자산이 있고, 자식에게 상속을 하고 싶다고 가정해보자.
- 우리나라 : 50%로 200억 세금 내고, 남은 200억 상속
- 미국 : 300억까지는 면세. 남은 100억에서 40억을 세금내고 360억 상속
- 캐나다, 호주 : 400억 모두 상속
우리나라에 비해 비교한 세 나라는 돈이 많은 사람들이 상속세 부담 없이 자산을 물려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 (나 같아도 이민을 택할 것 같다ㅎㅎ)
미국은 이민을 환영한다.
미국은 현재 EB5 비자라는 이민 프로그램을 만들어 80만 달러의 돈으로 영주권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이후에 가족을 초청할 수 있기 때문에 약 한화 10억원의 돈으로 가족들 모두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있다.
또한, 최근 트럼프 대선 후보는 아래와 같은 정책을 내놓기도 했다.
“미국에서 대학 졸업한 외국인들은 모두 영주권을 줘야 한다.”
왜 미국은 상속세에 대해 우리보다 관대하고, 영주권에 대해 저렇게 홍보하는 것일까?
위 2가지 예시만 봐도, 아무한테나 영주권을 막 뿌리는 것처럼 보이진 않을 것이다. 바로, 전세계의 부자들을 유치하기 위한 것이다.
부유층 이민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
이쯤에서 살짝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어차피 나는 300억을 가진 사람도 아니고, 앞으로 가질 가능성도 적은데 지금 이민을 택하는 저 사람들을 왜 생각해야 하는 지 어쩌라고 싶기도 하다.
우리나라 높은 상속세율? 싫으면 떠나시고, 다시는 돌아오지마세요라는 반응도 많이 나올 것이다. 배가 아픈건 사실이지만, 이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떠나는 것은 어쩌면 앞으로 단순한 일이 아닐 수 있다.
한국의 부유층들이 외국으로 떠나는 것이 과연 우리에게 좋을까?
크게 보면, 우리나라의 자원들이 이민국으로 빠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냥 단순히 평범한 국민으로 볼 것이 아니라, 막대한 자금을 가지고 있는 부유층이 말이다.
이들은 우리나라에 남들보다 많은 세금을 납부하면서 지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 부자들을 우리나라에서 나가라는 것은, 조금 과장되게 말하면 너네가 내던 세금 우리가 십시일반 더 낼테니 잘가라고 말하는 것이다. 사실 이들에게 뭐라고 하는 것도 웃기긴 하다. 누구나 돈을 많이 벌고 싶어하고, 피나는 노력으로 부의 위치에 간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들이 뭘 잘못했다고 욕을 먹어야할까?
이 밖에도 기업이나 사업을 정리하고 떠나는 부유층이 있을 수 있고, 이 과정에서 크게 넓혀보면 일자리 고용 측면이나 산업 기술 자체에도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결국 상속세율로 우리나라의 자본이 미국 등 타국으로 빨려버리는 효과가 매년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미 경험한 나라, 프랑스
2012년 프랑스는 고소득자에게 소득세율을 높이는 정책을 시행했다.
연소득 100만 유로 이상 소득자는 최고 75% 부유세를 도입한 것이다. 우리나라 상속세와 유사하게, 돈이 많은 자들에게 더 높은 세금을 부과하도록 정책을 변경한 것이다.
이로써 많은 프랑스 부유층들이 이민을 택하기 시작했다. 당시 세계 4위 부자였던 루이비통 아르노 회장은 벨기에로 이민을 신청하고, 유명한 배우나 가수 등도 뒤를 이었다.
추후 분석 결과, 프랑스 정부가 높아진 소득세율을 통해 확충한 세수보다 자본이탈로 발생한 손실비용이 훨씬 컸던 것으로 나왔다.
결국 고소득자의 소득세율을 높인 것은 국가적인 측면에서는 큰 손해가 된 것을 볼 수 있다.
단순히 세금을 더 걷기 위해 이런 선택을 했을까? 이건 정치적인 요소가 들어가 있는 선택이었다.
포퓰리즘의 영향
‘고소득자의 소득세율을 높여 더 많은 세수를 확보하여 국민들의 복지 혜택을 확대하겠습니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부자들에게 돈을 더 거두는 것에 반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환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결국 이런 점을 정치로 이용해서 대중의 표를 얻어내기 위해 사용하는 포퓰리즘의 영향은 따라올 수 밖에 없다.
부자들에게는 반대를 얻을 순 있지만, 더 많은 표를 받기 위해 밀어붙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단순히 국가적 측면의 이익과 손해만 두고 논하기에는 연결 점들이 너무 많다.
단순히 고소득자의 세금을 더 걷어 세수를 확보하는 것이 목표라는 1차원적인 생각에서 멈추지 않고, 그 내막에는 어떤 것들이 조용히 고려되고 있을지 한번 더 깊게 생각해보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좋다.
우리나라의 인천대교와 맥쿼리 관계 속 통행료 할인도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단순히 포퓰리즘을 넘어, 여러 새로운 정책이 시행될 때는 단편적으로 발표하는 내용 밖에서 누가 이득을 취할 수 있는가도 고려해보자.
다시 돌아오는 대한민국 이민자
우리나라는 2011년부터 시행하는 ‘외국국적동포 국적회복 절차제도’에 따라 65세 이상의 이민자들이 다시 대한민국 국적을 되찾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민을 가서 자산을 정리하고, 자식에게 증여까지 마친 후에 65세 이후 다시 대한민국으로 돌아와 잘 갖춰진 의료 시스템을 누리며 남은 여생을 보내는 식으로 한다고 하는데, 이건 상당히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대한민국 부자들은 상속세를 피하기 위해 이민이라는 선택으로 해외로 자산을 옮기고, 시간이 되면 돌아와서 내 돈을 지키고 다시 평소처럼 지낼 수 있는 점은 법을 교묘하게 피해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현재 제도 상태로는 형평성에 어긋나 보이지만, 부자들도 그들만의 절세 방법을 택하여 합법적인 형태로 살아가고 있다. 지금 상황으로는 우리나라도 상속세와 관련해서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지 않을까?
부유층의 유출을 막아야 한다
애초에 부유층의 자산 해외 유출을 막는 것이 가장 급선무일 것이다.
상속세율을 지금보다 줄일 수도 있고, 상속세가 높은 사람들에게 추가적인 세제혜택을 부여할 수도 있을 것이며, 다른 나라처럼 면세 혜택을 추가할 수도 있다.
이들의 돈이 우리나라 안에서 굴러야 경제적 측면에서 국가에게도 우리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반대로도 생각해볼 수 있다.
상속세를 떠나 다른 부분에서 우리나라에 머무르는 것에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절세를 포함한 다양한 좋은 투자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다. 미국, 캐나다 등 선진국이 가진 장점들을 많이 벤치마킹하고, 우리나라에 적용할 수 있는 부분들을 모색해봐야 한다.
또한 미국이 부자들의 이민을 활발히 유치하는 것처럼,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투자 이민에 파격적인 혜택을 부여하면서 타국의 자본을 끌어들이는 노력도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아직까지는 어색하지만, 앞으로 우리나라도 수많은 이민자들이 생겨날 것이다. (출산율 등 여러가지 요인을 고민해보면) 대부분 이민자라는 타이틀에 거부감을 느끼고 있지만, 단순히 저부가가치의 노동을 하는 이민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인지해야 한다.
앞으로 좀 더 경제적으로 나라가 부강하고 발전할 수 있는 방향으로 투자 가치 높은 이민자를 받는 방법을 찾아야 할 시기가 왔다. 지금처럼 인구 수 감소, 지방 몰락 등에 대한 해결책으로 빠지지 않는 것이 이민자 유입인 것처럼, 조금 더 체계적인 제도와 계획을 수립하고 대비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