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17
10월의 날씨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온도를 갖고 있다.
아침 저녁으로는 약간 쌀쌀한 편이지만, 오히려 이 때의 느낌이 좋다.
가벼운 재질의 바람막이를 입고, 시원한 가을 바람이 피부를 스칠 때 느껴지는 촉감이 좋다.
오후 5시. 뜨겁지 않은. 적절히 따스한 태양이 지평선 너머로 저물어갈 때, 하늘은 한 폭의 수채화가 된다. 분홍 빛으로 물 든 노을 아래, 이제 나무들도 점점 닮아가듯 붉어지고 있다. 진짜 가을이 오고 있다.
내게 가장 기억에 남는 바람은 언제였을까
학창 시절, 창가 쪽 책상에 엎드려 잠시 낮잠을 취할 때였던 것 같다.
아무도 없던 조용한 교실에서, 살짝 열린 창문 사이로 들어온 바람은 살랑살랑 소리를 내었고, 이를 맞이한 커튼도 조심스레 춤을 추었다. 그리고 운동장에 뛰놀던 아이들의 소음도 적당히 조화를 이루었다.
엎드린 머리 뒤 편으로 커튼과 바람의 촉감이 느껴질 때, 그때 바람의 공기와 온도는 나에게 편안함을 주었다.
지난 추억의 미화일까. 가끔 조용한 공간에서 눈을 감고 그때를 생각하면, 마치 영상을 틀어둔 것처럼 잠시 교실로 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만큼 그때 느껴진 모든 감각이 인상 깊었다.
15도에서 20도 사이. 덥지도 춥지도 않은 온도. 뜨거운 여름, 추운 겨울에 가장 그리운 온도가 아닐까?
지금 같은 가을 바람의 온도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너무 뜨겁고 답답하거나, 춥고 괴로울 때 곁에서 존재 만으로 편안함을 줄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바람이 불어온다’
바람이라는 주체가 온다고 표현하고 있는데, 그냥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었다.
살면서 느끼는 바람의 존재는 보통 내게 불어오는 것들이다. 그래서 이 말이 편한 것일지도 모른다.
입에서도 바람은 나온다. 초나 풍선을 불 때로 생각할 수 있지만, 말이나 대화에서도 나올 것이다.
나의 생각을 담아서, 바람을 타고 상대에게 전할 때, 말의 온도도 비슷한 것 같다.
나는 15~20도의 온도를 지닌 대화를 즐기는 사람인 것 같다.
무언가에 있어서 극단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말과 소리에 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누군가 높고 낮은 온도로 대화가 오가면, 그 사이에서 마치 에어컨과 난방처럼 온도를 조절하고 중재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인 것 같다.
때로는 너무 잔잔해서, 재미가 없을 수도 있는 온도다. 하지만 궁극적인 편안함과 안정감은 이 온도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온도 조절에 실패하면 칼바람이 되어 상대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적절한 온도가 좋다.
가을이 왔다. 이 가을이 너무 빨리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시간이 지나고 그리워하는 맛도 있지만, 지금 이 순간 이 바람의 온도를 느끼는데 집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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